생각☘

잃어버린 날 = 0

김난향 2024. 9. 2. 00:37

“모든 날 중 완전히 잃어버린 날은 한 번도 웃지 않은 날이다.” 포도뮤지엄의 벽면에 있는 글 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날은 얼마나 많은가?

3박4일동안 제주도에서 길위의청년학교 배움여행을 시작했다. 임원선생님께서 몇차의 회의를 거친 후 정한 일정으로 진행하였다. ‘평화’를 주제로 강정마을에 방문하여 시위에도 같이 참여하고 같이 목소리를 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강정마을에 방문하며 처음으로 ‘강정마을’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문제지만 지금 당장 나와 상관이 없어 그런지 몰라도 너무 무관심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강정마을에 미군기지를 만들고자하며 발생한 문제이다. 미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투표장을 알려주고 가둔 후 찬반 투표가 진행되었다. 돈을 받고 찬성하는 사람들만 투표한 결과는 당연히 찬성이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것은 불공정투표이니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찬성을 투표한 사람들도 그들 소유의 토지가 아닌데 대가를 받고 땅을 판 것은 주인이 아닌 사람과 거래를 한 것이니 무효를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여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시위에 참여해본 것이 처음이라 ‘시위’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에 속으로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기려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로타리에서 미군기지를 향해 “미군기지 폐쇄하라”라고 외쳤다.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반복해서 외치니 목소리가 계속 커졌다. 미군기지를 향해 행진하고 앞에서 노래에 맞춰 다같이 둥글게 서서 춤을 췄다. 강정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강정마을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오키나와, 타이완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언어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하는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기억될 것 같다.

선생님들끼리 매일 저녁 10시~11시에 모여 새벽 2~3시까지 비전워크숍을 진행했다. 6가지 질문에 대한 각자 선생님들의 답변을 돌아가며 말하고 답변에 대한 격려나 소감을 나눴다. 선생님들의 생각만 듣고 끝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도 말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저 듣고 든 나의 생각을 바로 말했다.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니 부끄러웠다. 한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이 발표할 때 열심히 적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셨다. 정돈된 말이 그 사람을 생각한 따뜻한 말과 결합하여 나와 듣는 사람이 기분 좋게 했던 것 같다. 열심히 고민하고 말을 한 흔적이 너무 예뻐보였다. “헌신의 다른 말은 사랑이라고 하잖아요?” “그림자의 존재를 알려면 해가 떠야해요.” “정답과 답은 다른다. 정답은 답이 정해져있고, 답은 그렇지 않다. 선생님께서 정답을 말하기보다는 답을 말하면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와 같은 답변을 하셨다.

나의 발표에는 포도뮤지엄에 있던 글귀를 인용하여 답변하셨다. “모든 날 중 완전히 잃어버린 날은 한 번도 웃지 않은 날이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현아선생님께서 가지고 있는 날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 밝은 에너지, 많은 날들을 활용하는 멋진 날들을 응원하겠습니다.” 그 답변을 들으니 나의 답변이 부끄러웠다. 다른 선생님들의 발표 내용을 필기도 해보고 소감으로 이런 말을 해야지!라고 생각을 미리 하여도 정돈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나의 모습을 받고 생각을 잘 정리하여 말을 하려면 책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3개월 전의 나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지만 여기서 멈추면 10년 뒤 나도 발전이 없기 때문에 더 나아가려고 한다. 청소년글쓰기네트워크에서 진행하는 오글에 참여하여 매일 글을 써 글에 자신감이 많이 차오르고 있었다. 오늘의 부끄러움을 원동력 삼아 더 발전하는 김현아가 되어보려고 한다.

나는 기록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사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밥을 먹으러 가도 음식사진도 찍지 않고, 새로운 장소나 의미있는 곳에 가도 사진을 잘 남기지 않는 편이다. 한마디로 게으르다는 말이다. 이런 내가 이사장님과 약속을 했다. 이번 배움여행에서 브이로그를 찍어보기로. 출발부터 카메라를 들었다. 평소 하던 행동이 아니라 너무 어색했지만 일단 찍어보았다. 밥을 먹을 때도 어디를 갔을 때도 일단 찍었다. 아직 편집을 하지 않았지만 너무 막 찍어 미래에 편집하는 내가 힘들 것 같지만 영상으로 기록을 하다보니 그 당시의 했던 말, 분위기가 잘 기록된 것 같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내가 까먹고 있어도 먼저 “선생님! 이거 찍어서 브이로그에 넣어요!”라고 제안도 주셨다.

이번 배움여행에 기록들이 참 많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선생님들이 찍어주셨기 때문이다. 그 당시 잠깐의 귀찮음으로 미뤄왔던 나의 과거가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 잠깐을 통해 미래의 내가 그 기억을 찾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이번 배움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평소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면 앞으로 카메라를 켜보도록 하고자한다.

매일 저녁 비전워크숍을 마치고 자체적으로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길위의청년학교 7기 선생님들은 다들 낭만이 가득하신 것 같다.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기타를 가져와 친구와 노래를 부르는 선생님. 장거리 이동하시느라 피곤하시지만 같이 참여하려 노력하신 선생님. 오랜만에 술을 드신 선생님. 선생님들과 대화가 즐거운 선생님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국에서 모이다보니 각자 지역에 대한 사투리를 이야기하다 낭만으로 주제가 넘어갔다.

“캔맥주를 왜 캔 째 드세요?”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설거지거리를 줄이기 위해?라는 별로인 답변을 했다. 돌아오는 말이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하는 것이 낭만이다.”였다. 너무 맞는 말이었다. 굳이. 평소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면 하는 말이다. 그 한마디에 나의 낭만이 반응을 하였는지 역으로 다른 선생님들에게 제안했다. “그럼 저희 별을 보며 맥주를 마실까요?” 별이 예뻤고. 같이 목성을 구경하는 선생님들도 좋았고. 모기가 물어 가려워도 좋았고. 그 분위기가 좋았다. “굳이?”라는 한 마디로 시작한 나의 낭만이었다.

이번 나의 배움여행은 성찰과 배움과 낭만으로 가득 찼던 것 같다. 3박4일이라는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선생님들과 관계도 맺으며 알차게 보내 마음 속이 꽉찬 느낌이다.